2008년 05월 17일
'청일전쟁에 관한 잡설'에 대한 잡설..
[관련글] 청일전쟁에 관한 잡설. (by 홍월영님)
1. '갑철(甲鐵)'은 장갑(裝甲)의 중국식 표현은 아니고 일본식 표현입니다...
메이지 유신 후에 일본이 최초로 도입한 장갑함이 바로 '코테츠(갑철)'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요. 일본 최초의 장갑함이라는 타이틀 덕분이라 그런지 그 후 상당기간 일본에서의 장갑함의 대명사는 '코테츠'가 됩니다.
일본 최초의 장갑함, 코테츠의 모습입니다. (코타츠가 아닙니다.;)
2. 그리고 중간에 정여창제독의 삽질에서 '기병식 전술'을 사용했다고 하셨는데 아마 황해해전 시 청국해군에서 이용한 '단횡진(單橫陣)'을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그 당시의 단횡진은 충각의 유효성이 크게 부각된 릿사해전의 전훈으로부터 비롯된, 그 당시로는 상당히 최신의 전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는 함포 보다는 일격에 적함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충각(Ram)전술이 각광을 받던 시대였으므로 정여창 제독이 해당 전술을 사용한 것은 어쩌면 필승을 기하기 위한 전술 채택으로써는 당연한 일 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황해해전에서는 청국해군의 단횡진은 일본해군의 단종진에 의해 격파당하고 말지요. 단횡진은 충각을 이용하는데 에는 유리하지만 전방의 함포만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함포전에서는 불리하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결과론으로 봐야 합니다. 실제로 함포의 유효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황해해전 이후로부터이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그 후 십 수 년 이상, 군함들은 함수에 여전히 충각을 장비하고 있지요.
그리고 초전에 기함인 정원의 신호 마스트가 포격으로 파손되었다는 것 역시 감안을 해야 합니다. 신호마스트의 손실은 당시 무전이 없던 시대에서는 기함에서 각 함에 대한 유기적인 통제를 불가능하게 하지요. 그러므로 정여창제독이 설사 전투 중에 자신의 진형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변경시킬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청국함대는 기함으로부터의 지휘계통이 마비된 채로 전투상태로 돌입하게 되고 이것이 각개격파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청국함대로써는 지독하게 운이 나빴던 셈입니다. 그런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청국해군의 몇몇 함선들은 끝까지 분투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고 해야겠지요.
3. 일본해군의 공포의 상징이었던 거함 진원과 정원 중에 정원은 그 모항이었던 웨이하이웨이(威海衛)에의 일본의 어뢰 공격으로 좌초되고 맙니다. (북양함대의 기지는 뤼순이 아니라 산둥반도의 웨이하이웨이입니다. 북양함대의 잔존세력이 항복한 곳도, 정여창 제독이 자결한 곳도 이곳이지요. 뤼순은 모항이라기보다는 수리시설이 있는 곳이지요. ) 진원의 경우에는 청일전쟁 후에 일본으로 배상함으로 넘어가게 되어 2급전함으로 편성되고 러일전쟁에도 보조함으로 참전했다가 그 후 일본에서 그 생애를 마치게 됩니다.
늘...처음의 설레임을 간직하는 내가 되길...Mizar
1. '갑철(甲鐵)'은 장갑(裝甲)의 중국식 표현은 아니고 일본식 표현입니다...
메이지 유신 후에 일본이 최초로 도입한 장갑함이 바로 '코테츠(갑철)'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요. 일본 최초의 장갑함이라는 타이틀 덕분이라 그런지 그 후 상당기간 일본에서의 장갑함의 대명사는 '코테츠'가 됩니다.

2. 그리고 중간에 정여창제독의 삽질에서 '기병식 전술'을 사용했다고 하셨는데 아마 황해해전 시 청국해군에서 이용한 '단횡진(單橫陣)'을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그 당시의 단횡진은 충각의 유효성이 크게 부각된 릿사해전의 전훈으로부터 비롯된, 그 당시로는 상당히 최신의 전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는 함포 보다는 일격에 적함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충각(Ram)전술이 각광을 받던 시대였으므로 정여창 제독이 해당 전술을 사용한 것은 어쩌면 필승을 기하기 위한 전술 채택으로써는 당연한 일 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황해해전에서는 청국해군의 단횡진은 일본해군의 단종진에 의해 격파당하고 말지요. 단횡진은 충각을 이용하는데 에는 유리하지만 전방의 함포만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함포전에서는 불리하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결과론으로 봐야 합니다. 실제로 함포의 유효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황해해전 이후로부터이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그 후 십 수 년 이상, 군함들은 함수에 여전히 충각을 장비하고 있지요.
그리고 초전에 기함인 정원의 신호 마스트가 포격으로 파손되었다는 것 역시 감안을 해야 합니다. 신호마스트의 손실은 당시 무전이 없던 시대에서는 기함에서 각 함에 대한 유기적인 통제를 불가능하게 하지요. 그러므로 정여창제독이 설사 전투 중에 자신의 진형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변경시킬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청국함대는 기함으로부터의 지휘계통이 마비된 채로 전투상태로 돌입하게 되고 이것이 각개격파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청국함대로써는 지독하게 운이 나빴던 셈입니다. 그런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청국해군의 몇몇 함선들은 끝까지 분투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고 해야겠지요.
3. 일본해군의 공포의 상징이었던 거함 진원과 정원 중에 정원은 그 모항이었던 웨이하이웨이(威海衛)에의 일본의 어뢰 공격으로 좌초되고 맙니다. (북양함대의 기지는 뤼순이 아니라 산둥반도의 웨이하이웨이입니다. 북양함대의 잔존세력이 항복한 곳도, 정여창 제독이 자결한 곳도 이곳이지요. 뤼순은 모항이라기보다는 수리시설이 있는 곳이지요. ) 진원의 경우에는 청일전쟁 후에 일본으로 배상함으로 넘어가게 되어 2급전함으로 편성되고 러일전쟁에도 보조함으로 참전했다가 그 후 일본에서 그 생애를 마치게 됩니다.
늘...처음의 설레임을 간직하는 내가 되길...Mizar
# by | 2008/05/17 09:58 | Miscellaneous... | 트랙백 | 핑백(1) | 덧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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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글] '청일전쟁에 관한 잡설'에 대한 잡설.. 위의 관련글을 쓰고 보니 청일전쟁에서의 청국의 북양함대와 일본의 연합함대의 대결이었던 황해해전에 대해 부가적인 포스트를 해볼까하는 생각이 ... more
단지 2.의 경우는 쓰신 대로 이탈리아 해군과 붙은 리싸 해전의 영향이 아닌가 하지만, 이는 일본이나 중국쪽 논문의 경우에도 최신- 이라기보다는 운 좋은 해전이다, 뭐 이런 얘기도 있는 모양입니다.
일본군 장갑함 개성도 멋집네다.
아예 근대 이전의 해전을 보면 함포가 측면으로만 나 있어서리
정면 사격은 불가능하고 꼭 옆으로 돌아서 쏴야 하는 거이 좀 답답한데
하긴 동력선과 현대식 함선이 등장한 뒤로도 정면 사격이 가능하다 해도
아무래도 측면으로 돌아야 모든 함포를 발사하는 거이 가능하니낀...
아마 홍월영님께서도 러일전쟁에서의 일과 살짝 혼동하신게 아닌가 싶더군요..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의 해전에서는 구태의연한 해군의 전술에서 근대해군의 전술로 변환되는 시기에 실험된 여러가지 함선이나 전술들이 나오기 때문에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이 많지요. 저 개인적으로도 흥미를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군함에서 돛이 완전하게 사라지는 것은 조금 뒤의 일이지요..
그 때만해도 기관만으로 항해를 하기에는 조금 신뢰성이 부족한 시대의 일이라서요..
네, 그런겁니다. 전 밀리터리 마니아(마니아에요!마니아!)
미자르님도 그렇고 오시는 분들도 그렇고 대단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