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단상

새로 추가된 밸리들에 대한 단상

한동안 잠수를 하고 있는 동안에 밸리에 세 개의 새로운 밸리가 추가가 되었군요. 역사, 연애, 창작 밸리가 그것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추가가 되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였습니다.
상당히 뒷북일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다음은 새로 접한 밸리에 대한 개인적인 단상입니다.

1. 역사밸리
- 개설과 동시에 나름 정체성이 잘 드러나는 게시물들이 올려지고 있군요. 기존에 세계밸리로 올리던 역사관련 글들이 대거 몰린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조금 분야가 한정되지 않았나 싶기는 합니다만 기존부터 활발하게 글을 올리시던 분들도 많아 앞으로도 기대가 되는 밸리입니다.

2. 연애밸리
- 솔직히 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만들어져봐야 효용이 없는 밸리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현재 상황은 제 예상 이상이더군요. 많은 분들이 연애밸리가 만들어지면 알콩달콩하고 달달한 사랑 이야기가 올라오실 것이라고 예상하셨을 지도 모르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해묵은 성대결이 벌어지고 있군요. 마치 인간의 속성 중의 하나가 투쟁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다지 앞날이 기대되지 않는 밸리입니다. 뉴스비평 밸리의 멀티라고 해야 할까, 그저 분란의 씨앗이 늘어났구나 하는 감상뿐입니다.

3. 창작밸리
- 뭔가 '창작'에 관련된 것이라면 모두 잡다하게 올려지고 있다는 느낌이더군요. 밸리 자체 제목이 그래서 그런지 그 정체성도 아직은 모호하다는 인상이었습니다. 뭐.. '창작'이라는 단어만 놓고 본다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닙니다만.. 왠지 잡담밸리가 되고 있는 듯 하네요.

일전에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포괄할 수 있는 밸리도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이번에는 추가가 되지 않은 것 같군요. 가급적이면 이글루스 측에서는 유저의 요구가 있다고 해서 지나치게 특화된 밸리를 양산해내는 것 보다는 다른 밸리와의 조화나 향후의 발전방향도 고려를 하는 것이 좋지 않나 싶네요. 그런 의미로는 블로그코리아의 채널과 같은 시스템도 도입해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미 유명무실화 된 기존의 가든을 대신해서 말이지요.

by Mizar | 2008/09/04 10:05 | Blog Life | 트랙백(1) | 덧글(36)

어느 날 검색키워드에 묘한 단어들이 걸린다면?

가끔 자신의 블로그의 세부통계에서 검색어 순위리스트를 보다보면 예기치 않은 검색어들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곤 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어느 날의 제 블로그의 검색 키워드 목록입니다. 사실 제 블로그는 검색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순위 20이 다 채워지는 날은 거의 없지요. 위의 캡쳐를 보시면 제 블로그에서 나올만한 단어들 - 천체망원경, 스즈미야 하루히, 별자리 등- 도 있습니다만 상당수의 그렇지 않은 단어들도 보이지요.

많은 분들이 이런 사용한 적도 없는데 검색어에 걸리는 묘한 단어들을 보시면 '내 블로그에서 관련 내용으로 포스팅을 한 적도 없는데 왜 이런 게 나오나?'해서 궁금해 하시더군요. 그러나 사실 검색엔진이라는 것이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똑똑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포스트 안에 단어의 일부가 그것도 띄엄띄엄 포함되어있으면 그걸 검색결과로 인정해서 보여주는 것이지요. 일종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식이랄까요. 그러므로 사실상 그 검색어라는 것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겁니다.

그럼에도 어떤 분들은 생소한 검색어에 놀란 나머지 포스트를 올리시는데 거기에 더해서 해당 단어들을 포스트 내에 '이런 단어가 있었다'라고 '명시'해버리시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포스트에 명시한 단어 때문에 다음에 검색엔진이 해당 검색어로 찾아올 가능성을 높이고 마는 겁니다. 마치 철가루가 자석에 붙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므로 가끔 튀어나오는 묘한 검색어를 보셨다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한 번 웃고 넘기시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겠지요. 검색어는 마치 소문과 같은 속성이 있어서 건들면 건드린 만큼 부풀어 올라 주체하지 못하게 되는 법이니까요.

by Mizar | 2008/08/16 11:52 | Blog Life | 트랙백 | 덧글(19)

오랜만의 '스즈미야 하루히의 한숨'에 대한 단상

예전에 이미 읽고 지나갔던 '스즈미야 하루히의 한숨'이었지만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처음에 봤을 때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새삼스럽게 드러나더군요. 그래서 간단하게 정리해봅니다.

1. '스즈미야 하루히의 한숨'은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중 두 번째 장편으로, SOS단이 유명한 '아사히나 미쿠루의 모험'의 영화화과정에서 일어나는 해프닝들이 나옵니다. 영화 자체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른 권에서 따로 단편으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 스즈미야 하루히가 민폐녀라는 설정이 있지만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파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폐도를 이야기한다면 전 시리즈 중에 으뜸으로 그것을 보면서 짜증을 내는 쿈과 더불어 독자 역시 보는 내내 짜증을 낼 수밖에 없는 권이지요. 역자 후기에서 번역자가 2권의 제목을 '한숨'이라기보다는 '폭주'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고 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도 동의합니다. 사실 스즈미야 시리즈에서 하루히 자신의 폭주와 민폐는 대부분 2권에서 나오기 때문이지요. 작자가 굳이 '한숨' 이라고 이름 지은 것은 그런 폭주 중에 낙담해버린 하루히의 정신 상태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3. 2권이 묘하게 보이는 것은 작중의 시간이 이미 SOS단 결성으로 부터 반년이나 지난 10월경임에도 불구하고 작중 인물들 간의 관계는 결성당시로 부터 별로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인 점도 있을 겁니다. 처음 2권을 읽을 때에는 그러려니 했던 것들입니다만 차후의 시리즈에 나오는, 문화제가 시작되기 전까지에 있었던 많은 사건들 - 이를테면 대표적으로 끝없이 반복된 8월이라던가, 여름방학의 고도여행, 칠석의 사건 등을 거치면서 만들어져온 인물들 간의 유대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은 작자인 타니가와 나가루씨가 이 시기에 그 전 이야기를 집필하지 않은 단계이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덕분에 유독 2권만이 다른 시리즈에 비해 붕뜨는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요. 2권 중에서 타니구치가 나가토가 안경을 끼지 않고 다니는 것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시기적으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실제로 나가토가 안경을 끼지 않게 된 것은 작품의 시점에서도 이미 몇 달 전의 일이니 말입니다.

4. 그나저나 번역서 161페이지, 타니구치와 쿠니키다의 대화에서 '택시의 <빈차> 표시가 마치 <애차>인 것처럼 보인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무슨 의미인가 싶어서 원서를 찾아보았습니다. 원문의 빈차는 空車로 애차는 말 그대로 愛車라고 표시되어 있더군요. 이 부분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멀리서 보면 한자가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데 원래의 의미를 아는 분이 혹시 계시는지요?

5. 전반적으로 뭔가 산만하고, 캐릭터들의 개성이나 세계관이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감이 느껴지는 권으로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의 1권을 재미있게 보신 분들이 2권에서 그만 접어버린 경우가 많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 외의 시리즈와도 겉도는 감이 있는 일종의 흑역사와도 같은 권이라고 할까요.
아마 3권과 4권에서 제대로 이런 점을 극복해주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이 시리즈의 명성은 없었을 듯합니다.

6. 어쨌든 문화제를 준비하는 SOS단의 활동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큰 매력이 없는 2권이었습니다만 쿈과의 다툼으로 의기소침해졌을 때의 하루히는 꽤 귀여웠다고 이야기하면 이상할 까요? ^^; 쿈의 한마디로 다시 기운을 회복하는 그 장면만은 그럭저럭 볼만했다고 생각되는군요.

by Mizar | 2008/08/11 11:31 | Suzumiya Haruhi | 트랙백 | 덧글(14)

오쓰 사건과 일본 헌정의 수호

때는 러일전쟁이 일어나기 10여 년 전인 1891년, 당시 러시아의 황태자였던 니콜라이가 일본을 방문하였습니다. 참고로 이 니콜라이 황태자는 나중에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되는 사람입니다.
세계 최대 제국의 황태자의 방문을 일본은 가히 거국적으로 환대했습니다. 당시 이 스물세 살의 젊은 황태자는 일본에서의 환대에 크게 만족했고 나름 즐거운 추억을 가지고 일본 순방 일정을 마치는 듯했습니다만..
일본 방문 중의 어느 날, 시가현(滋賀縣)의 오쓰(大津)라는 곳의 대로를 황태자 일행이 인력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 행렬에 주변의 환영인파는 마치 천황이 거리를 지나가는 것처럼 모두 고개를 숙이고 경비하는 순사들은 거수경례로 예를 표하고 있던 그 때, 돌발적인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황태자의 주변을 경비하던 순사 하나가 허리에 찬 사벨을 빼어 들고 황태자를 습격한 것이지요.
자신을 경비하던 순사의 돌연한 습격으로 생명의 위기에 처한 니콜라이 황태자였고 실제로 칼에 뒷머리를 베여 피를 흘릴 정도의 상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다행히 그 이상의 부상은 당하지 않고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천만다행으로 황태자의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이 사건 - 오쓰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오쓰 사건'으로도 불립니다.- 일본 전역을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온 일본의 국민들은 이 사건에 놀라 황태자가 입원한 병원으로 수많은 위문품과 위문전보를 보내지요. 일본 천황도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바로 기차를 타고 몸소 황태자의 문병을 오는 등 일본의 조야는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난리가 납니다. 심지어 쿄토부에서는 하타케야마 유코라는 한 여인이 이 사건에 사죄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을 할 정도였으니 가히 공황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황태자 자신이 오히려 이런 일본인들의 반응에 사의를 표할 정도였다니 말이지요. 어쨌든 일본에서의 나머지 일정은 취소되고 황태자는 코베에서 군함을 타고 러시아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나저나 이제 남은 것은 니콜라이 황태자를 습격한 범인인 쓰다 산조(津田三藏)를 어떻게 처리 하느냐에 달린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일본은 동아시아의 약소국에 지나지 않았고 이 문제를 잘못 처리해서 만약 러시아와 전쟁이라도 하게 되면 일본의 앞날은 보장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범인의 처리에 일본과 러시아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일본의 조야는 범인의 무조건적인 사형을 주장했고 결국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제동을 건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대심원장 코지마 코레카타(兒島惟謙)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코지마는 무조건 사형을 촉구하는 사람들에게 법률을 들어 '외국의 황족이 상해를 당했을 때에는 일반인의 상해사건으로 취급하여 무기징역이 한도'그 이상의 형량을 부여하는 것은 위법으로 사형판결을 내릴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당시 일본은 바로 얼마 전에 헌법을 제정한 상태로 코지마는 이제 막 도입한 헌법을 어기는 것은 헌정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는 나쁜 선례로 작용할 것으로 보았던 것이지요. 또한 실제로 그 전에 외국에서 비슷한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도 사형에 처하지 않고 종신형으로 처리한 전례가 있었다는 것을 들어 반대를 한 것이지요.

그러나 사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압력도 대단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결국 '전쟁이 나서 나라가 망하고 나면 법률이 무슨 소용이냐?'라는 것이었지요. 근대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좋다. 나라가 멸망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었지요. 그러므로 형법 116조(일본의 황족을 위해했을 경우에 사형)을 확대 적용하여 무조건 사형을 처하라는 압력을 사법부에 가했습니다. 이에 코지마는 다음과 같이 응수 합니다.

"법률을 왜곡해 버리면 오히려 러시아를 비롯한 모든 외국으로 부터 경멸을 받게 되고, 앞으로 100년은 두고두고 국가에 해를 남기게 될 겁니다. "

" 러시아와 전쟁을 하느냐 마느냐는 정부의 조치에 달렸습니다. 만약 전쟁이 터진다면 제가 선두에 서서 사법계를 이끌고 전장에 나서도록 하지요."

결국 정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사법부는 당시의 법률에 의거한 판단으로 쓰다를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의 판결을 내립니다.
일본 사법부가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자국의 법률에 의거해서 소신 있는 판결을 내린 것을 목도한 세계 각국은 그 판단에 납득하는 표정을 보였으며 러시아조차도 그 뒤로 다른 압력을 가하지 않고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최소한 영토할양이나 배상금, 최악의 경우에는 러시아의 전면전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던 일본으로써는 천만다행인 결과가 되었지요. 이러한 법률에 의거한 판결은 일본의 헌정시스템에 대한 국외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었으며 이것은 그 뒤 외국과의 불평등조약 개정에 있어서도 의미있는 사례로 작용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일본 헌정을 지켜낸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이야기에서의 어떤 사람들 처럼 당장의 편의나 목적을 위해서 시스템을 만든 사람 자신들이 그 시스템을 무시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제는 100년이 넘은 옛 이야기입니다만 요즘의 우리에게도 시사 하는 바가 큰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늘..처음의 설레임을 간직하는 내가 되길...Mizar

by Mizar | 2008/08/07 11:07 | Miscellaneous... | 트랙백 | 핑백(1) | 덧글(30)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